9월 20일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평신도 지도자 정하상 바오로,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가톨릭 대축일입니다. 한국 교회가 세워진 역사와 순교자들의 문화적 의미를 함께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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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박해와 가톨릭 신앙의 시작

한국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독특합니다. 서양 선교사가 직접 들어와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이 서학(西學) 서적을 통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며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 말, 이벽과 권철신, 정약용의 형제들 같은 지식인들이 서양 천주학 서적을 읽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이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적 질서를 중시하던 사회였기에,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가톨릭 신앙은 국가 질서와 충돌했습니다. 결국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해 수많은 박해가 이어졌고, 수만 명의 신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김대건, 정하상, 그리고 동료 순교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과 사명

김대건 안드레아는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사제가 한 명도 없었기에, 교회는 중국으로 청년들을 보내 사제 양성을 받게 했습니다. 김대건은 1836년 마카오 신학교에 입학해 1845년 사제품을 받고, 조선 최초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하고 복음을 전하며 목숨을 걸고 사목했습니다. 1846년 체포된 뒤 새남터에서 스물다섯의 나이에 참수당했으나, 그의 순교는 한국 교회 신앙의 거대한 불씨가 되었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와 평신도의 신앙

정하상 바오로는 평신도 지도자로, 교회의 기초를 다진 인물입니다. 그는 박해 시대에도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 “조선에 사제를 파견해 달라”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신자들이 단순히 ‘신앙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제도적 뿌리를 세우려 한 노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정하상은 스스로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 공동체를 조직하며, 박해 속에서도 교회의 불씨를 지켜냈습니다. 결국 그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으나,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한국 교회의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

순교자들의 삶은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한국 사회와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째, 자유와 양심의 가치를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조선 사회에서 국법을 어기고 신앙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향한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권과 종교 자유의 가치로 이어집니다.

둘째, 한국적 신앙 문화의 형성입니다. 순교자들은 유교적 전통 속에서도 신앙을 새롭게 해석하고, 하느님을 향한 충성을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살아냈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 정신을 계승해 가족 단위의 신앙 전승이 강한 특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셋째, 세계 교회 안에서의 보편성입니다. 한국 순교자들의 시성은 전 세계 교회에 “신앙은 국경을 넘어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한국을 직접 방문해 103위 순교자를 성인품에 올린 것은,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성경 속 순교와 한국 순교자들의 정신

순교자들의 삶은 성경 말씀 안에서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루카 9,23)

순교자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고,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의 말씀은 이들의 믿음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고문을 당하면서도 석방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히브 11,35)

이는 순교자들이 바라본 것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순교 정신

오늘날 우리는 직접적인 박해 속에 살고 있지 않지만, 세상 안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물질주의와 무관심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선택하는 것 또한 작은 순교라 할 수 있습니다.

순교자 대축일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실천을 권고합니다.

  • 신앙의 자유를 감사하며 지키기
  •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신앙 전승을 이어가기
  • 세상 속에서 정의와 진리를 선택하는 용기 가지기


결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정하상 바오로, 그리고 103위 동료 순교자들은 한국 교회의 기초이자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신앙의 용기와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 대축일을 맞아, 우리는 한국 교회의 뿌리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하며, 신앙을 더욱 굳건히 다져야 합니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정신은 오늘 우리 안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